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은 2015년 출간 이후, 독특한 세계관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고등학교 보건교사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안은영’이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기묘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국 문단에서는 드물게 경쾌한 문체와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해, ‘힐링 퇴마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이 작품은 이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국내외 팬층을 넓히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줄거리와 더불어, 정세랑 특유의 따뜻한 메시지와 독특한 세계관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정세랑 소설 줄거리
『보건교사 안은영』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미림고’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안은영은 어려서부터 영적인 존재를 보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이를 숨기고 살아가며 일반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을 외면할 수 없어 퇴마사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보건교사가 된 이후, 미림고 안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영적 존재들—작가가 ‘젤리’라고 표현하는 형체들—을 정화하거나 제거하는 일을 맡게 된다. 젤리는 인간의 감정, 원한, 기억, 억눌린 욕망 등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영적 잔재로서, 학교 곳곳에 스며들어 학생들의 일상에 영향을 끼친다.
은영은 장난감 칼과 비비탄총이라는 독특한 도구를 통해 젤리를 제거한다. 이는 전통적 퇴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싸우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녀의 주변에는 한문 교사인 ‘홍인표’가 있으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영적 에너지의 근원으로, 은영이 젤리와 맞서는 데 중요한 조력자가 된다. 작품은 여러 에피소드들—괴이한 식물 사건, 엘리베이터 속 소녀의 영혼, 도서관 속 악한 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은영이 다양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지키는 이야기를 그린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으며, 안은영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내면 변화도 함께 담아낸다.
보건교사 안은영 세계관의 특징
정세랑이 창조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관은 기존 한국 문학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설정으로 가득하다. 첫 번째 특징은 ‘젤리’라는 개념이다. 일반적인 퇴마물이나 오컬트물에서의 귀신, 악령과는 다르게, 젤리는 구체적인 인격이나 목적 없이 그저 감정과 기억의 잔재로 형성된다. 때문에 때로는 악의적이고, 때로는 그저 외로움을 품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무의식과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학교라는 공간의 활용이다. 미림고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공간이다. 건물 내부의 구조, 오래된 수목들, 오래된 지하실 등은 젤리가 생성되고 머무는 장소로 기능한다. 정세랑은 이를 통해, 교육기관이라는 장소가 때로는 억압과 상처의 축적지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공간 자체가 캐릭터처럼 움직이고 감정을 품고 있다는 설정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더욱 독창적으로 만든다.
또한 무기의 설정도 흥미롭다. 안은영은 도검이나 부적 같은 전통적 퇴마 도구 대신, 어린 시절의 장난감인 빨간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총을 사용한다. 이 상징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그녀가 여전히 순수하고 무력한 개인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그녀의 퇴마 행위가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정화와 공감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녀는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보듬고, 정리하는’ 쪽에 가깝다. 이는 정세랑 작가가 말하는 히어로의 새로운 형태이기도 하다. 이처럼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관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은유하는 구조로서 설계되어 있다.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와 감동
『보건교사 안은영』은 단순한 오락적 판타지를 넘어서,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안은영은 젤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타인의 감정과 상처를 직시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 약자,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또한, 은영이라는 캐릭터는 히어로이면서도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고, 혼자 감당하기 힘들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정해진 사명에 순응하거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이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지점이다. 우리가 반드시 대단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지키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메시지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의 서사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학생들의 작은 사연, 홍인표의 존재론적 고민, 은영의 내면적 외로움 등이 복합적으로 엮이며, 독자는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지닌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은 판타지를 도구로 삼되, 인간 본연의 감정과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을 던진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여기에 있다.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특한 문학 작품이다. 비록 영적인 존재와 싸우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과 ‘공감’이 있다. 이 작품은 퇴마와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감정과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안은영과 함께 미림고를 거닐며 숨겨진 세계를 마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