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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청춘의 고독, 그리고 존재의 허무

by KKOKS79 2025. 4. 30.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는 한 청년의 시선을 따라 펼쳐지는 기억과 상실의 연대기로, 사랑, 죽음, 고독,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1960~70년대 일본 청년 세대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작품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감정선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청춘이 겪는 상실과 삶의 덧없음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글에서는 『상실의 시대』의 핵심 줄거리와 주요 인물 분석, 그리고 작품이 현대인에게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들을 살펴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줄거리 요약: 잃어버린 시간 속의 나와 너

소설의 화자인 와타나베는 30대에 접어든 한 남성으로,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회상은 1960년대 도쿄로 거슬러 올라가, 자살한 절친 기즈키와 그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즈키의 죽음 이후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복잡한 감정의 교류를 이어가지만, 나오코 역시 정신적 불안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동시에 활기차고 솔직한 성격의 미도리와도 가까워지며, 두 여성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는다. 결국 나오코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되고, 와타나베는 방황 끝에 스스로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이야기는 선형적 서사보다 정서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며, 독자는 와타나베의 상실, 불안, 성장 과정을 깊숙이 체험하게 된다.

 

와타나베와 나오코: 상처와 고독으로 맺어진 관계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상처를 공유한 이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하는 연대이자 교차점이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의 자살 이후 남겨진 죄책감과 상실감을 안고 살며, 나오코는 그와의 연결고리로 남은 와타나베에게 애틋하면서도 불안정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 둘은 삶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 와타나베는 불안 속에서도 일상과 타인을 향한 열린 태도를 유지하려 하지만, 나오코는 점점 현실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녀의 요양원 생활은 물리적 거리만이 아닌 심리적 거리의 은유이며, 끝내 자살로 이어지는 그녀의 선택은 와타나베에게 깊은 공허와 혼란을 남긴다. 이 관계는 무라카미 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잃어버린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미도리: 상실과 생의 양면을 품은 캐릭터

미도리는 나오코와 대조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인물로, 죽음의 기운에 가득 찬 나오코와 달리 ‘삶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끌리는 감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도리에게 이끌리며, 그녀를 통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러나 미도리 또한 가족의 병간호와 죽음을 겪고 있으며, 겉보기와는 달리 삶에 대한 고뇌를 안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은 나를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늘 무너지고 있어"라고 말하며, ‘밝음’조차도 방어적 태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와타나베가 결국 미도리를 선택하게 되는 결말은, 단지 한 여인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와타나베가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상징적인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죽음과 성장: 청춘의 상실과 존재의 질문

『상실의 시대』에서 죽음은 단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청춘의 통과의례로 기능한다. 기즈키, 나오코, 하쓰미 등 작품 속 인물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그 곁에 머무르며, 독자는 이 죽음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존재론적 고통과 책임을 바라보게 된다. 와타나베는 고독과 상실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는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남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자문하며,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상실의 시대』는 죽음을 로맨틱하게 미화하지 않으며, 삶이란 결국 무수한 상실 속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는 통찰을 제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집약과 오늘날의 의의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획득한 작품으로, 그만의 문체적 특징—고독, 상실, 재즈와 고전 음악, 책과 도시—을 집대성한 대표작이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에게 ‘청춘의 성서’로 읽혀왔다. 이 소설은 특정 시대의 청춘만이 아닌, 모든 세대의 인간이 겪는 감정—잃음, 사랑, 고독, 방황—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면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감당할지를 묻는 작품으로 남는다. 『상실의 시대』는 말한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