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죽음 앞에서 되찾는 인간성의 의미

by KKOKS79 2025. 4. 8.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삶과 죽음, 용서와 구원, 고통과 치유라는 깊은 주제를 다루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사형수와 자살 시도자라는 두 상처 입은 영혼이 만나 나누는 대화와 교감은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죽음과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희망

죽음을 앞둔 사람과 삶을 포기한 사람이 만났을 때, 그 대화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공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자살 시도 후 삶을 외면한 채 살아가던 주인공 문유정과, 세 번의 살인을 저질러 사형수가 된 윤수라는 남성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두 사람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었지만, 교도소의 한 상담실에서 매주 목요일 마주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고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회복해간다. 문유정은 어린 시절부터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외삼촌에게 유린당했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조차 진정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겉으로는 성공한 피아니스트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허무와 자기혐오, 절망이 가득하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도 결국 자신이 더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고모인 문교수 수녀의 권유로 사형수를 면회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윤수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삶은 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어쩌면 문유정보다도 더 깊은 절망 속에 놓여 있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사회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문유정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털어놓게 되고, 문유정 역시 윤수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게 된다. 소설은 이 두 인물이 단순한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관계를 넘어, 깊은 인간적 교감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매주 목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이 만남은 그들에게 일상 속 유일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이 시간이 점차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삶과 죽음,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공지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동시에 회복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받고, 때로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에도 누군가의 손길과 시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바로 그런 희망을 말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거창하거나 비극적이지 않다. 단지, 매주 목요일 아침 교도소 면회실에 앉아 함께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조용히 건네는 말,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안에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사랑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이 고통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 힘은 된다고 말한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구원은 신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유정과 윤수의 만남은 그런 점에서,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의 산 증거이다.



상처를 공유하며 이어지는 삶의 연대와 구원의 가능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한 인간의 구원이 신앙이나 제도, 혹은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과 이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유정과 윤수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포기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적이 없는 과거를 지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마침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된다. 이 작품의 중심은 결국 '대화'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말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진심과 감정, 침묵과 눈물, 때로는 분노와 자책까지 오가는 감정의 교류이다. 작가는 대화를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치유와 회복의 통로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윤수는 처음에는 자신의 죄에 대해 말하지 않고 감정을 억제하지만, 문유정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함에 따라, 서서히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 고백은 단순한 참회가 아니라,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절절한 외침이다. 문유정 역시 윤수를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고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어릴 적 받은 상처와 가족의 냉대, 그리고 외삼촌에게서 받은 지울 수 없는 폭력을 애써 묻어둔 채 살아왔다. 그러나 윤수의 고백과 마주하며, 그녀 역시 자신 안에 묻어둔 상처를 꺼내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며 치유의 과정을 걷기 시작한다. 이는 상처의 공유가 단순한 동정심이나 연민이 아니라,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서 가능한 진정한 연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윤수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회피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사형을 앞두고도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인식하며, 자신이 더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유정은 그에게 단지 용서라는 단어를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윤수의 삶 자체가 벌이었고, 그 삶을 온전히 살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속죄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것이 이 작품이 말하는 '구원'의 핵심이다.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라는 메시지다. 작품의 전개는 절제되어 있지만 감정은 풍부하다. 특히 교도소에서의 면회 장면들, 그 정해진 시간 안에 서로의 진심을 전달해야만 하는 긴장감과 절박함이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작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과장 없이, 그러나 매우 밀도 있게 묘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 감정을 함께 겪게 만든다. 독자는 문유정의 내면 속 상처에 공감하고, 윤수의 침묵에 숨겨진 고통을 함께 짊어진다. 그만큼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체험을 하게 만든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종교적 분위기도 특징적이다. 문유정의 고모이자 수녀인 문교수는 그녀를 교도소 면회에 데려가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종교가 반드시 제도와 경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행위 자체가 신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작가는 매우 실천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폭력과 상처, 죄와 절망을 다룬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희망과 사랑, 구원과 회복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이다. 단순한 로맨스도, 감상적인 치유 서사도 아닌,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감정의 진실을 다룬 이 작품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전하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가능성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제목과는 달리, 시작부터 끝까지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다룬다. 자살 시도자, 사형수, 아동 성폭력, 가정 폭력, 종교적 회의감, 그리고 사형 제도의 윤리적 문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말한다.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마주하면서도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있다고. 문유정과 윤수는 세상이 보기에는 실패한 인물들이다. 하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저버리려 했고, 다른 하나는 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죄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발견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이 사형제도에 대해 가지는 문제의식은 매우 뚜렷하다. 윤수는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 않지만, 작가는 그가 단순히 사형으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할 만큼의 ‘버려야 할 인간’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유정의 변화는 더욱 인상 깊다. 처음에는 강요받듯 교도소를 방문했고, 내키지 않는 태도로 윤수와 마주했지만, 점차 그의 인간성을 보며 자신 역시 잃었던 감정을 되찾는다. 그녀는 윤수의 처형이 다가오자 눈물을 흘리며, 그가 겪어온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녀의 눈물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그동안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사랑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는 증거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은 일종의 반어법처럼 느껴진다. 윤수가 문유정과 함께 보냈던 목요일 오전이 유일하게 ‘행복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진실한 이유라는 것을. 이 소설은 그 어떤 처절한 외침보다도 더 큰 울림을 가진 조용한 이야기이다. 감정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지만,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조용히 흔들며, 결국은 치유로 이끈다. 공지영은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치유의 힘을 보여준다. 상처를 드러내고, 고통을 공유하며, 인간이 인간을 다시 이해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인간다움과 진심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결국,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끌어안고, 사랑이 단지 감정이 아닌 책임과 기억이라는 것을 말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에도 이 작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윤수가 남긴 짧은 말 한마디, 문유정이 흘린 눈물 한 줄기가 긴 여운으로 남아 독자의 마음속에서 반복해서 되새겨진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타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묵직한 기도이자 선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장 간절히 되찾고자 하는 진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