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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소설 줄거리와 연결의 힘을 말하는 50개의 삶

by KKOKS79 2025. 4. 3.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은 한 병원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 50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되는지를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저마다의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버텨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연대와 공감, 그리고 희망을 전하는 정세랑 특유의 문학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피프티 피플』,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도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서사를 갖고 살아간다. 때로는 고립된 채로, 때로는 누구의 인생에도 큰 영향 없이 조용히 흘러가지만, 한 도시 혹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삶은 의외로 깊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은 그러한 삶의 교차와 연결에 주목한다. 단일한 주인공 없이 무려 50명의 등장인물들을 각자의 시점에서 조명하면서도, 이들이 만나는 지점에 따뜻한 서사를 펼쳐내는 이 작품은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시도이자 성취라 할 만하다. 소설의 배경은 한 병원이다. 중소도시의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웃, 환자, 의사, 간호사, 식당 직원, 청소노동자, 행정직원 등 병원과 직접·간접적으로 연결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늘게 혹은 진하게 서로를 스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야기는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그들이 가진 사연과 감정, 갈등과 소망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정세랑은 『피프티 피플』에서 인물 간의 우연한 만남과 짧은 스침조차도 서사의 일부로 정교하게 엮어낸다. 누군가의 진료기록지에 적힌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병원에서 스쳐 지나간 한 얼굴이 어딘가의 장면에서 다시 등장해 서사를 밀도 있게 만든다. 이처럼 촘촘하게 짜인 서사 구조는 등장인물 수에 비해 혼란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삶의 얽힘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사회의 평균적 기준에서 보자면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사건과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픈 가족을 간호하는 청년, 사랑에 상처받은 간호사, 성소수자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의사, 삶의 끝자락에서 평화를 찾고자 하는 노인, 반복되는 야근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조리사 등, 이들의 이야기는 ‘이야기될 자격이 있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세랑의 문체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부드럽다. 감정을 과도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사려 깊고 절제된 어조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는 극적인 반전을 만들기보다, 일상 속에 숨은 의미를 길어 올린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때로는 버겁고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작고 단단한 희망의 조각이 함께 자리한다. 이 작품은 단지 연결된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관계망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는지를 조명하는 사회적 지도이기도 하다.

 

50개의 삶, 50가지의 의미 — 다양성과 공감의 서사

『피프티 피플』은 5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방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그 어떤 인물도 피상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작가는 각 인물에게 고유한 이야기를 부여하며, 독자가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독자는 마치 도심 속 군중 속을 걷듯,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이들을 마주치며 함께 웃고 울게 된다. 이야기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의사와 간호사처럼 병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병원 외곽에서 식사를 준비하거나 청소를 하는 노동자, 병원에 잠시 들렀던 방문객, 심지어 병원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그 범위는 매우 넓다. 이는 하나의 공간이 단지 공간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삶의 교차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작품 속 인물들은 사회에서 쉽게 잊히거나 가려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는 조리사, 병원 복도에서 아이를 달래며 걷는 젊은 엄마,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꼭 잡은 부부의 모습 등, 그들의 이야기는 크고 작은 사건 속에 묻히기 쉽지만, 정세랑은 그런 순간에 집중하며 소중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모든 삶은 의미 있다’는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이 소설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도 함께 포용한다. 성소수자 문제, 노동자의 권리, 가족 간의 돌봄, 의료 시스템의 한계, 청년 실업, 여성의 경력 단절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인물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작가는 이를 강요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점에서 『피프티 피플』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귀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공감의 서사다. 독자는 어떤 인물에게든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그의 선택과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하루를 스쳐가며, 그가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피프티 피플』은 우리가 스쳐 지나간 모든 얼굴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독자에게 오래도록 남는 이유다. 정세랑은 이 모든 삶의 조각들을 마치 퍼즐처럼 엮어내며, 각 인물의 서사가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아주 작고 미세한 접점일지라도, 그 접점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우리의 세계를 좀 더 단단하게 지탱한다는 믿음이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다.

 

『피프티 피플』이 보여준 삶의 진실 — 연결과 존중의 문학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은 인간 군상의 조감도다. 단 하나의 주인공도 없고, 드라마틱한 갈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고 절절하게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늘 중심에 서는 인물만 기억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말한다. “당신도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이 작품은 존재의 위계가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주인공과 조연의 구분 없이, 모든 인물들이 삶의 주체로서 등장한다.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의사와 청소를 하는 노동자가 같은 비중으로 다뤄지고, 어느 한쪽도 더 특별하거나 덜 중요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서술 전략이 아니라, 정세랑 작가가 지닌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비롯된 문학적 태도이다. 『피프티 피플』은 사회적 통념이나 기준을 뛰어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연결함으로써 하나의 커다란 인간 공동체를 완성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축소판이자, 동시에 이상적인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세랑은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그녀는 비극을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희망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이란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는 것임을, 누구도 그 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잔잔하고도 단단한 언어로 보여준다. 『피프티 피플』은 그 언어로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도 다르게 보인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는 이의 뒷모습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피프티 피플』은 그런 변화를 만드는 소설이다. 거대한 사건 없이도 마음을 움직이는, 오랜 여운을 남기는 따뜻한 연결의 서사.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독자에게 선물하는 ‘삶의 온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