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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은 여름 ] 줄거리와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일상의 기록

by KKOKS79 2025. 4. 3.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일상 속 깊이 스며든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 허무, 그리고 삶의 복원을 다룬 단편들이 모인 작품이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 겪는 죽음, 이별, 단절의 순간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내며, 현대인의 정서적 고립과 내면의 진동을 탁월하게 포착한다. 이 소설집은 바깥이 아무리 맑고 여름이어도, 각자의 내면은 여전히 겨울일 수 있음을 조용한 목소리로 전한다.

 

창문이 보이는 곳에 앉아있는 여자 책이 있고 여름 햇살이 비추는 창문

『바깥은 여름』, 슬픔의 계절을 건너는 사람들의 이야기

문학은 종종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들을 대신 써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상실이나 죽음과 같이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감정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조용히 되살아나며 독자의 내면을 건드린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을 비롯해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은 누군가의 부재와 그로 인한 슬픔, 허무,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삶을 조용히 응시한다. 김애란은 현대 한국문학에서 가장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지닌 작가 중 한 명이다. 『바깥은 여름』에서 그녀는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을 일상의 디테일 속에서 끌어올린다. 이 소설집은 표제작 〈바깥은 여름〉을 포함하여 총 7편의 단편을 담고 있으며,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이지만 공통적으로 '죽음'이나 '헤어짐'이라는 테마를 품고 있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죽은 자가 아니라 남겨진 자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표제작 〈바깥은 여름〉은 어린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삶의 표면만을 살아가는 듯한 감정적 무기력 속에 있다. 아파트를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려는 부부의 움직임 속에서 작가는 ‘이별 이후의 세계’를 그린다. 공간은 옮겨도 기억은 따라오고, 바깥은 여름이어도 마음속은 여전히 겨울이라는 모순이, 작품의 정조를 아름답게 구성한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입동>에서는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언니가 등장하고, <건너편>에서는 이혼 후 혼자가 된 여성의 불안정한 정서가 다뤄진다. 각각의 단편은 특정한 사건보다는 그것이 남긴 ‘정서의 파편’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작가 김애란 특유의 문장력과 섬세한 감각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소설집의 매력은 ‘극적인 장면’보다는 ‘극적이지 않은 순간들’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는 데 있다. 아주 사소한 움직임, 말투, 눈빛 하나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며, 독자는 그 감정에 쉽게 이입되고 공감하게 된다. 『바깥은 여름』은 슬픔을 말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가만히 눌러 앉히며, 오히려 그 무게를 더 강렬하게 전달한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읽는 이의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상과 감정의 파문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겪고, 그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김애란은 죽음이라는 사건보다 ‘그 이후’에 더 주목한다. 실제로 죽음은 소설 속에서 이미 일어난 상태이며, 작가는 그 여파 속에서 인물들이 보이는 무너짐, 무감각, 방황, 혹은 되찾은 삶의 조각들을 탐색한다. 표제작 〈바깥은 여름〉의 부부는 아들을 잃은 후에도 이사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정해진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 일상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던 듯 진행되지만, 내면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다. 아들의 빈자리는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그리움은 말로 표현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억눌려 있다. 독자는 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무언의 절규를 느끼게 된다. 〈입동〉에서는 언니가 동생의 자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생의 죽음을 타인에게 설명하며 오히려 그 슬픔에서 멀어지려 한다. 이 작품은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현대인의 감정 표현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노찬성과 에반〉은 어린 시절 외국으로 입양된 친구를 떠올리는 이야기로, 이질적인 문화와의 단절, 관계의 모호함, 그리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외로움’과 ‘소외’라는 주제를 미묘한 감정선으로 그려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감정의 떨림을 느끼게 한다. 또한 〈건너편〉에서는 이혼 후 혼자 남은 여성이 공황 장애와 불면증, 무기력과 싸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외부 세계와 자신 사이에 벽을 쌓는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인물을 무기력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움직임, 아주 미세한 변화 속에서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바깥은 여름』은 이처럼 ‘상실’이라는 테마를 다양한 인물과 구조로 변주하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작가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감정의 결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린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우리는 상실을 겪는 인물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바깥은 여름, 그러나 마음속은 여전히 겨울인 사람들에게

『바깥은 여름』은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상실의 흔적을 조용히 비춘다. 김애란은 과장되지 않은 문체와 절제된 감정 묘사로, 오히려 더 깊고 진한 슬픔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거창하게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말없이 밥을 먹고, 택배를 뜯고, 침대를 정리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일상 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정의 파편들이 조용히 숨어 있다. 이 소설집의 제목처럼, 바깥은 분명히 여름이다. 계절은 따뜻하고 햇살은 눈부시다. 하지만 인물들의 내면은 여전히 겨울이고, 그 계절은 좀처럼 지나갈 기미가 없다. 작가는 이 모순된 계절감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복잡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삶은 언제나 바깥과 안쪽이 다르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무너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김애란은 작지만 확실한 희망의 불씨를 이야기 끝에 슬며시 남겨둔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 집 안의 햇살 한 조각, 문득 떠오른 기억 속 장면 하나가 인물들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독자는 그 미세한 변화를 통해, 비록 상실은 극복되지 않더라도 ‘견디는 것’이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견딤 속에서 삶은 다시 조금씩 이어진다. 『바깥은 여름』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아픔에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네는 책이다.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는,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말해주는 공감이다. 김애란은 독자에게 억지로 울게 하지 않고, 억지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록 내면은 겨울일지라도 결국 여름이 올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된다. 이 소설집은 상실을 다루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여전히 따뜻한 것을 찾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바깥은 여름』은 그런 사람들, 잃고도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문학적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