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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온다 ] 광주의 아픔을 마주한 소설 속 진실

by KKOKS79 2025. 4. 1.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들과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동호’를 중심으로 그와 연결된 인물들의 시선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폭력의 참혹함과 인간의 존엄성, 기억과 증언의 의미를 조용하지만 강렬한 언어로 전한다.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선 이 작품은, 집단적 상처와 치유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탁월한 예시로 평가받는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가 전하는 목소리 없는 이들의 기록

문학은 때로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도구가 되며, 그 속에서 말할 수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지 당시의 참상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과 상처, 침묵과 기억이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과 폭력에 맞서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주인공 동호는 열다섯 살 소년으로, 군부의 발포로 인해 사망한 친구 정대열의 시신을 지키고자 도청으로 향한다. 그는 감시와 공포, 죽음이 도사리는 공간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동호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후 그와 얽힌 인물들—연희, 승민, 정대열의 누나, 도청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의 내면과 기억을 통해 서술된다. 이 구성 방식은 단일한 시점이 아닌 다각도의 시선으로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광주의 참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를 넘어서, 폭력이 인간 존재에 끼친 깊은 상흔과 그로 인해 변화된 삶의 궤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기억의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어떻게 증언할 수 있을까? 시간 속에 묻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문학은 어떤 언어를 선택해야 하는가? 작가는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절제된 문장으로, 오히려 그 고통의 깊이를 더 절절하게 표현한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광주라는 지역의 이야기, 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을 기록한 소설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기록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역사의 짐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가진 힘은 사건 그 자체의 비극성보다는,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대하고 기억을 이어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기억의 책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을 넘어 기억과 증언으로 이어지는 삶의 연대

『소년이 온다』는 장마다 서술자가 바뀌며 사건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구조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파장을 남겼는지를 서서히 드러낸다. 소설은 동호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의 존재가 남긴 여운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희는 당시 함께 도청에 있었던 여성으로, 생존 후에도 끊임없이 악몽과 환청에 시달린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겪은 이중적 폭력과 트라우마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내면은 동호의 죽음과 광주에서의 기억을 놓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무너진다. 또한 동호의 친구였던 승민은 살아남았지만, 이후의 삶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에 의해 지배된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자책하며,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모습은 단순한 트라우마를 넘어서, 사회가 만들어낸 침묵과 외면의 구조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들의 삶을 통해, 폭력의 실체는 물리적 행위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통과 외면이 또 하나의 폭력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 단지 매년 반복되는 기념행사나 교과서 속 정보가 아닌, 그날의 고통과 목소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작중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이어가고, 때로는 그 기억에 무너지고, 때로는 연대 속에서 다시 일어선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에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과거의 아픔을 마주하는 일은 단순히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 한강의 문장은 극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차분하고 절제된 언어로 고통을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기억의 윤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죽은 자의 시선’이라는 문학적으로 도전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독자가 단순한 감정적 소비자가 아닌 증인의 위치에 서도록 유도한다. 『소년이 온다』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문학이 다뤄야 하는지를 섬세하고도 단호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기억하고 말하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소년이 온다』는 죽은 자를 위한 애도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남겨진 책임에 대해 묻는다. 소설은 단순히 한 시기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 이후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고통과 침묵, 기억의 무게를 조명한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동호를 기억하며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목격자이자 피해자이며, 동시에 증언자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그 어떤 위로도, 기억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말한다. 잊는다는 것은 두 번 죽이는 일이며,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라고. 동호는 소설 초반에 죽지만, 그의 존재는 전편에 걸쳐 살아 숨 쉰다. 그는 상징이 되고, 누군가의 악몽 속에 나타나며, 증언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처럼 한강은 죽음 이후에도 잊히지 않는 존재들을 통해, 독자가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야 함을 강하게 암시한다. 또한 소설은 폭력의 실체가 단순히 물리적 힘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법과 제도, 언론과 사회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폐와 왜곡은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짓밟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과거의 고통을 무덤 속에 묻어둘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를 위한 기억의 자산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해답은 독자 각자의 마음속에 맡긴다. 『소년이 온다』는 읽는 동안 결코 쉽지 않은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곧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만들며, 기억의 중요성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 소설은 단지 한국 현대사 속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모든 억압받는 존재들의 삶과 죽음을 조명한 보편적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문학이 어떻게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 존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곧 문학의 힘이며, 동시에 기억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한 편의 소설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잊히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인간적인 증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