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의 『금강산 유람기』는 근대 지식인이 바라본 금강산의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역사, 문화, 철학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단순한 산수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조선의 민족성과 정신, 그리고 당대의 문화적 풍토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이 작품은, 단아하면서도 격조 있는 문체로 조선 지식인의 시선과 사유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이 글에서는 『금강산 유람기』의 핵심 내용, 문학적 가치,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운을 남기는 미학적 의미를 조명한다.
줄거리 요약: 산수 유람 속 민족의 영혼을 만나다
『금강산 유람기』는 신익희가 금강산을 직접 유람하며 경험한 여정을 글로 남긴 작품으로, 단순한 관광 기록이 아닌 지식인의 사유와 정서가 녹아든 문학적 산문이다. 그는 금강산을 걷고 오르며 봉우리와 폭포, 계곡과 절터를 감상하는 동시에, 그곳에 담긴 역사와 인물, 불교와 유교,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깊이 있게 통찰한다. 각 지점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단순한 감탄을 넘어, 근대 조선의 문명과 자연, 인간성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는 금강산을 단순한 경치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선 민족의 영혼이 담긴 상징적 공간으로 해석하며, 유람을 통해 조선의 미래를 사유한다. 이 기행은 단지 산을 오른 여정이 아니라, 시대와 민족의 자각을 향한 정신적 탐방인 셈이다.
근대 지식인의 시선: 금강산과 민족의 정신
신익희는 단순한 문인이 아니라, 당대의 대표적 민족주의자이자 정치사상가였다. 그런 그의 시선으로 본 금강산은 자연경관을 넘어 민족 정신과 연결된다. 그는 유람기를 통해 자연을 보는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역사를 긴밀히 엮으며, 금강산을 “민족 혼의 거울”로 묘사한다. 절벽 위 절터에서는 사라진 승려들의 고요함을 떠올리고, 휘몰아치는 폭포 앞에서는 조선인의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한다. 그는 자연이 곧 철학이며, 산천이 곧 역사의 기록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사유는 금강산이 단지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인이 되돌아봐야 할 정체성과 영혼의 상징이 되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던 조선 지식인의 ‘자각’과 ‘저항’을 품은 문학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산수의 미학과 문체의 절제
『금강산 유람기』는 고전적인 한문체와 근대적 산문이 절묘하게 혼합된 형식을 보여준다. 신익희는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자연 앞에서의 경외와 감상을 담담하면서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금강산의 절경을 묘사하는 문장은 회화적이면서도 시적인 감흥을 자아낸다. 그는 눈 앞의 풍경을 ‘보다’기보다는 ‘느끼고 음미’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자연과 교감하고, 그 안에 내재한 조선의 정서적 근원을 함께 느낄 수 있다. 폭포 소리, 구름에 가린 봉우리, 바위에 새겨진 옛 글자 하나까지도 신익희는 역사와 철학으로 해석한다. 이 절제된 문체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며, 산수의 미학을 정신적 깊이로 끌어올린다.
기행문을 통한 민족 정체성의 회복
당대 조선은 제국주의의 침탈과 근대화라는 격변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금강산 유람기』는 이런 상황 속에서 전통과 자연을 통해 민족의 본질을 되새기고, 스스로의 정신을 가다듬기 위한 문학적 시도였다. 신익희는 금강산 유람을 통해 단절된 조선인의 정신을 회복하려 했고, 이는 곧 문화적 독립과 연결된다. 자연을 통해 배우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고민하는 그의 글은 단순한 수필이 아니라, 민족의식을 환기시키는 정신적 실천이었다. 그래서 『금강산 유람기』는 근대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저항의 방식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금강산 유람기』의 오늘날 가치
오늘날 우리는 여행을 소비와 체험 중심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지만, 『금강산 유람기』는 여행이 곧 ‘사유’이며 ‘반성’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신익희는 이 기행문을 통해 자연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을 성찰하고 시대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의 글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금강산 유람기』는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로, 지금도 우리를 깨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단지 옛날 지식인의 여행기가 아닌, 시대를 넘어선 사유와 정신의 유산으로서,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문학적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