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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삼대』 세대 간 갈등 속 근대인의 자아 찾기

by KKOKS79 2025. 4. 24.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는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과 근대 지식인의 내면적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삼대』의 주요 인물과 줄거리를 중심으로, 당대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아를 찾고 윤리적 선택을 갈망하는지를 분석한다.

 

삼대의 세 세대

 

『삼대』 줄거리 요약: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 대립

『삼대』는 제목 그대로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세 세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조덕기는 서울에서 성장한 근대 교육을 받은 청년으로, 자신의 아버지 조상훈과 할아버지 조의관 사이에서 가치관의 충돌을 경험한다. 조의관은 전통 유교적 가치를 중시하며 가족과 명예를 우선시하는 인물이고, 조상훈은 표면적으로는 근대화된 인물이지만 실상은 위선적이고 탐욕적인 중간 세대다. 반면 조덕기는 새로운 지식인으로서 서구적 합리성과 자유주의를 추구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 이상과 타협하며 방황한다. 이러한 세 인물의 관계 속에서 독자는 근대화의 과도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확인하게 되며, 조덕기의 내면적 갈등은 그 시대 지식인들의 정체성 혼란과 도덕적 고민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세대 간 갈등과 전통과 근대의 충돌

『삼대』의 핵심 갈등은 단순한 가족 내부의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곧 한국 사회가 겪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이 세대 간의 가치 대립으로 드러난 것이다. 조의관은 유교적 윤리와 가부장제를 고수하며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려 한다. 반면 조상훈은 겉으로는 신문물과 근대화를 수용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패와 기만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조덕기는 이 두 세대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하지만, 그 역시 완전히 독립된 윤리적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시대적 모순에 휘말린다. 그는 근대적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러한 세 인물의 대비는 한국 사회가 전통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문화적 충격과 도덕적 혼란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염상섭의 리얼리즘 기법과 문체의 특징

염상섭은 한국 근대문학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삼대』에서도 그의 서술은 매우 사실적이며,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맥락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그는 과도한 서정이나 감정적 개입 없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당대의 윤리적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인물의 대화와 내면 독백을 통해 그들의 이중적 태도와 갈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도시 중산층의 위선적 삶을 고발한다. 또한 작품 속 배경은 당시 서울의 거리, 한옥과 양옥의 혼재, 신문과 잡지, 직장과 가정 등 구체적인 풍경으로 가득해 근대 도시의 변화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문체와 구성 덕분에 『삼대』는 단순한 가족소설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문화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여성 인물들의 묘사와 젠더 시선

『삼대』는 남성 중심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여성 인물들도 시대의 희생자이자 변화의 징후로 묘사된다. 조덕기의 어머니와 숙부의 아내, 그리고 그가 관계를 맺는 근대 여성들은 모두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억압, 갈등, 새로운 자아의 추구를 상징한다. 이 여성들은 유교적 가족 제도 속에서 소외되거나, 남성의 이중성에 의해 희생당하지만, 동시에 시대 변화에 따라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지려는 모습도 보인다. 염상섭은 이들의 삶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처한 불균형과 불평등을 조명하며, 여성의 존재를 하나의 시대적 거울로 활용한다. 특히, 조덕기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갈등과 미숙함은 그 역시 완전한 근대적 주체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삼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삼대』는 한국 문학사에서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 시대적 전환기에 놓인 인간 군상의 복합적인 갈등을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세대 간의 단절, 도덕적 혼란, 위선과 진실의 충돌,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로 남아 있다. 현대 사회 또한 급속한 변화와 세대 간 인식 차이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고 있으며, 『삼대』는 그 근원을 되짚는 문학적 단서가 된다. 염상섭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너의 윤리는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가?” 『삼대』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오늘의 우리가 고민해야 할 자아, 윤리, 가족, 사회의 본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