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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줄거리와 권력에 순응한 사회의 자화상

by KKOKS79 2025. 4. 25.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폐쇄적 공간을 통해 권력과 복종, 정의와 침묵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한 작품이다. 한 반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구조와 그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방식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자, 보편적 인간 심리를 상징하는 서사로 기능한다. 이 글에서는 작품의 줄거리, 인물 분석, 그리고 권력에 대한 상징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문학적 가치를 조명한다.

 

교실 속 일그러진 영웅

 

줄거리 요약: 작은 교실 속 큰 권력

소설은 6학년이 된 '나'가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그 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장 '엄석대'의 존재를 눈여겨보게 된다. 엄석대는 교사 앞에서는 모범생이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거의 독재자처럼 행동하며 절대적 권위를 행사한다. 그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장악하고 조종하며, 모든 규칙과 질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런 체제에 의문을 가진 주인공이었지만, 점차 저항에 실패하고, 결국 타협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이 등장하면서 엄석대의 권력은 철저하게 붕괴된다. 이후 엄석대는 추락하고, 반 아이들은 이전의 체제를 외면하며 그를 철저히 배척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이 겪은 그 시절의 진실과 지금의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엄석대의 캐릭터: 교실 속 작은 독재자

엄석대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다. 그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권력은 단순히 폭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아이들의 욕망과 불안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교사에게는 모범생으로 비춰지며 상찬을 받고, 친구들에게는 통제와 감시를 통해 질서를 부여한다. 그는 아이들 사이에서 사실상의 '작은 국가'를 운영하며, 반 아이들은 그 체제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이러한 엄석대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권력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작가는 그를 통해 권력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암묵적 동의와 순응 속에서 강화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엄석대는 폭군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택한 자일 수도 있다.

 

‘나’의 변화와 침묵의 심리

주인공 '나'는 처음에는 엄석대의 체제에 강하게 저항한다. 정의와 논리로 무장해 그에게 맞서려 하지만, 아이들의 무관심과 암묵적 지지 속에서 철저히 고립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정의가 허무하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 결국 그 체제에 순응하는 쪽으로 돌아선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사회 속 인간의 심리를 상징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협하고, 침묵하며, 편안함을 선택하는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특히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은 그때의 부끄러움과 무력함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침묵은 죄가 아닐 수 있지만, 진실을 외면한 죄는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교실이라는 공간: 사회의 축소판

작품의 배경은 단순한 초등학교 교실이지만, 이 공간은 권력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며, 붕괴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회다. 엄석대는 권력자이고, 아이들은 시민이며, 교사는 방관자 또는 외부 권력이다. 아이들 간의 관계는 계급과 연대, 배신과 기회주의가 혼재된 현실의 축소판으로 그려진다. 특히 새로 부임한 담임이 나타나 엄석대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은, 외부에서 개입된 권력이 기존 권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역사적 반복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역시 또 다른 권력의 등장일 뿐, 아이들이 진정한 자율성과 정의를 체득하는 과정은 아니다. 결국 이 교실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조직과 구조를 상징하며, 독자는 그 속에서 사회와 권력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전하는 교훈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단순한 성장소설이나 교훈적 이야기로 읽히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권력에 저항하다가 결국 순응하고, 시간이 흐른 후 그 시절의 부끄러움을 마주하는 ‘나’의 시선은 우리 모두가 살아오며 경험했을 수 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엄석대는 누군가의 얼굴일 수 있고, 때로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권력과 인간성, 자유와 타협의 경계에서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정의를 택하고 있는가?" 작가는 단순히 권력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권력을 가능하게 만든 침묵과 타협, 집단의 선택에까지 비판의 시선을 확장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며,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문학적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