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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순이삼촌』 줄거리와 제주 4·3을 향한 기억과 증언의 문학

by KKOKS79 2025. 4. 29.

 

현기영의 단편소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국가 폭력과 이념 대립 속에서 상처 입은 제주 사람들의 고통과 침묵을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개인의 비극을 통해 집단적 아픔을 증언하며, ‘말하지 못한 역사’가 문학을 통해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은 4·3사건을 기억하고 치유하기 위한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 증언문학으로 평가받는다.

 

 

순이삼촌의 고요한 순간

 

줄거리 요약: 순이삼촌의 상처와 말하지 못한 이야기

『순이삼촌』의 서사는 서울에서 제주로 여행을 온 ‘나’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는 순이삼촌이라는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평화롭던 제주 마을에 감춰진 비극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순이삼촌은 평범한 농촌 여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주 4·3사건 당시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한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쉽게 말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도 그녀의 존재를 회피하거나 꺼려한다. 하지만 작중 화자는 그녀의 침묵과 눈빛, 말없는 제스처 속에서 말보다 깊은 증언을 읽어낸다. 소설의 마지막, 순이삼촌은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라는 듯한 표정으로 조용히 산을 바라보며 끝을 맺는다. 작품은 말해지지 않은 역사와, 그 속에서 침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서늘하게 조명한다.

 

4·3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문학화

제주 4·3사건은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와 그에 대한 국가의 무차별 진압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랜 시간 동안 금기시되었고, 희생자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침묵을 강요당했다. 『순이삼촌』은 그 침묵을 문학이라는 언어로 복원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이다. 현기영은 이 작품을 통해 4·3사건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조명하며, 역사적 사실을 고발하는 동시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특히 순이삼촌이라는 인물은 단지 한 명의 여성이 아니라, 당시 제주도민 전체의 상징적 존재로 기능한다. 그녀의 침묵과 상처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금기의 기억’을 상징한다. 이처럼 『순이삼촌』은 문학이 침묵을 깨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순이삼촌’이라는 인물의 다층적 의미

순이삼촌은 단지 피해자의 상징이 아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제주도민으로서, 그리고 역사 속 소수자이자 생존자의 상징으로 읽힌다. 그녀는 말이 적고 조용하지만, 작품 전체를 끌어가는 무게 중심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사건을 증언하고 있으며, 그녀의 삶은 국가 폭력이 개인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순이삼촌은 공동체로부터 이방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원망하거나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살아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견디고 있다. 이는 강한 저항이 아닌, 조용한 생존의 윤리이자 ‘기억의 지속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인물은 문학 속 인물 그 이상으로, 실제 역사의 현실성을 끌어안은 진짜 사람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현기영의 문체와 서사 전략

현기영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강한 정서를 담아낸다. 그는 감정을 과잉으로 표현하지 않으며, 대신 인물의 동작과 침묵, 풍경 묘사를 통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순이삼촌』에서는 화자의 외부적 시선과 순이삼촌의 내면을 병치함으로써, 말하지 않는 목소리의 힘을 강조한다. 또한 현기영은 제주 방언과 지역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그 지역 고유의 삶과 문화, 그리고 역사성을 작품 속에 통합한다. 그는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역사를 ‘살게 한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4·3의 역사적 진실을 자료로서가 아니라, 체험으로서 느끼게 된다. 이러한 문체적 전략은 현기영 문학의 힘이자, 『순이삼촌』이 단순한 고발문학을 넘어선 이유이기도 하다.

 

『순이삼촌』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

『순이삼촌』은 과거의 고발이 아니라, 오늘날의 반성과 성찰을 위한 텍스트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갈등과 이념의 대립, 국가 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진실을 은폐하거나 외면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런 시대에 『순이삼촌』은 말한다.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떤 이념도, 어떤 국가도 개인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는 점을 말없이 보여준다. 또한 ‘말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순이삼촌은 문학 속 인물이지만, 그와 같은 이들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순이삼촌』은 기억과 회복, 그리고 치유를 향한 문학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이며, 침묵을 뚫고 나온 한국 현대문학의 기념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