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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개밥바라기별』 청춘의 기억, 사랑, 그리고 시대의 그림자

by KKOKS79 2025. 4. 22.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은 1970년대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청년의 성장과 첫사랑, 그리고 정치적 각성 과정을 회고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이 글에서는 『개밥바라기별』의 줄거리와 인물 분석을 통해, 시대의 아픔과 청춘의 이상이 교차하는 문학적 의미를 살펴본다.

 

개밥바라기별을 향한 시선

 

『개밥바라기별』 줄거리 요약과 주인공 정우의 여정

『개밥바라기별』은 1970년대 중반, 한국 사회의 암울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화자인 정우가 젊은 시절의 첫사랑 ‘수인’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회고체 형식으로 진행된다. 정우는 군 입대를 앞두고 방황하던 중, 미대생 수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정치적인 이유로 곧 체포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된다. 그 후 정우는 군 복무, 베트남 파병, 유신 체제하의 정치적 억압, 노동운동 등 다양한 시대의 사건들을 관통하며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형성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수인에 대한 그리움은 끝내 사라지지 않으며, 그의 삶은 그 별처럼 멀리서 흐릿하게 빛나는 ‘수인’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소설은 개인의 성장과 시대의 그림자가 어떻게 얽히는지를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수인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사라진 청춘의 이상

‘수인’은 단지 첫사랑의 대상을 넘어서, 주인공 정우가 품고 있던 이상과 순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예술과 저항의 감성을 동시에 지녔고, 체제에 맞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강단을 가졌다. 반면 정우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현실에 타협하거나 멀찍이에서 바라보는 입장에 머문다. 수인은 정우에게 있어 ‘개밥바라기별’처럼, 가까이 닿을 수 없지만 늘 마음에 남는 존재이다. 이 사랑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한 청춘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상징한다. 황석영은 수인을 통해 독자에게 ‘당신은 어떤 신념과 사랑을 지키며 살아왔는가’를 묻고 있다. 이는 개인의 감정사를 넘어, 세대적 감성과 연결된 질문이다.

 

개밥바라기별: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은유

제목인 ‘개밥바라기별’은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떠 있는 금성을 가리키는 순우리말로, 항상 바라보지만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상징이다. 정우에게 있어서 수인은 바로 그 개밥바라기별이며, 동시에 자신의 젊은 날, 순수했던 열망, 놓쳐버린 이상 그 자체이다. 황석영은 이 별의 이미지를 통해, 삶이란 본질적으로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과 갈망의 연속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청춘은 아름답지만 불완전하고, 사랑은 뜨겁지만 끝내 완성되지 않으며, 이상은 지향하지만 현실에 의해 꺾이기도 한다. ‘개밥바라기별’은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상징으로, 소설 전체를 감싸는 서정적 울림을 제공한다.

 

시대의 폭력 속에서 성장하는 개인

『개밥바라기별』은 자전적 소설이면서도, 특정 세대가 겪었던 시대의 억압과 저항의 서사로도 읽힌다. 1970~80년대의 유신 정권, 노동운동, 민주화 투쟁,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 청년들의 방황이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정우는 수인의 부재만이 아니라, 사회적 불의와 억압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다. 황석영은 주인공의 성장 과정에 실제 정치적 사건들을 병치시키며, 개인이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자기 존재를 지켜내려는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기억의 서사인 동시에, 시대의 질곡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이야기다. 정우의 여정은 곧 그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개밥바라기별』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울림

『개밥바라기별』은 단순한 회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 속에 묻힌 사랑과 상처, 그리고 이상에 대한 아련한 성찰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정우가 끝내 수인을 찾지 못하듯, 우리 역시 삶에서 놓쳐버린 어떤 것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황석영은 이 소설을 통해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잊고 지내다 어느 날 불현듯 되살아나는 감정과 기억을 껴안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고, 다시 삶을 꾸려나가는 힘을 얻는다고. 『개밥바라기별』은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서 가장 현재적인 감정을 건져내는 아름다운 문학이다. 닿을 수 없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어떤 마음, 그것을 우리는 여전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